K-TOUR › 축제 테마지도 › 인천개항장 국가유산 야행
밤에 열리는 개항장, 8야(夜)를 걷다
인천개항장 국가유산 야행은(는) K-TOUR가 만든 축제 테마지도입니다. 밤에 열리는 개항장, 8야(夜)를 걷다. 볼거리 47곳·먹거리 34곳·카페 12곳·공방 5곳 등 98곳을 걸어서 잇고, 장소마다 유래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테마지도의 축제 — 인천개항장 국가유산야행 · 2026.10.09 ~ 2026.10.11
1890년 은행 건물 · 지금은 근대건축전시관
1890년 문을 연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은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은행이 조선과의 무역 자금을 다루려고 세운 건물입니다. 개항장에 남은 은행 건물 가운데 가장 이른 축에 들고, 지금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이 되어 개항기 건축의 흐름을 모형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밤에는 석조 정면에 조명이 들어와 낮과는 다른 얼굴을 보입니다.
1892년 은행 · 맨사드 지붕이 눈에 띄는 집
1892년 오사카에 본점을 둔 제58은행이 인천에 낸 지점입니다. 2층 벽돌 건물에 프랑스식 맨사드 지붕을 얹어 은행거리에서도 한눈에 띕니다. 해방 뒤 여러 금융기관을 거쳐 지금은 요식업 협회가 쓰고 있어, 제1·18·58은행이 나란히 서 있던 옛 풍경을 떠올리며 걷기 좋습니다.
1908년 응봉산을 뚫은 무지개 석문
1908년 응봉산 자락을 뚫어 만든 무지개 모양의 석문입니다. 일본 조계와 축현(지금의 동인천) 쪽을 잇는 지름길로, 화강암을 쌓아 올린 아치 아래로 지금도 차와 사람이 지납니다. 개항장에서 가장 극적인 통로이고, 야행 때는 아치에 조명이 켜져 사진 명소가 됩니다.
1890년 성공회 첫 선교지 · 1956년 석조 성당
1890년 코프 주교가 인천에 상륙해 대한성공회의 첫 선교를 시작한 자리입니다. 지금의 석조 성당은 한국전쟁으로 옛 건물이 불탄 뒤 1956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로마네스크풍 돌벽과 작은 종탑이 언덕 위에 단정하게 서 있습니다. 성당 터에는 영국인 의사 랜디스가 세운 병원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일본인 사업가의 집 → 1950~60년대 시장 관사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사업가의 집으로 지어져 해방 뒤 1950~60년대에 인천시장 관사로 쓰였던 집입니다. 일본식 목조 주택의 구조가 잘 남아 있어 시 등록문화유산이 되었고, 최근 복원을 거쳐 시민에게 열렸습니다. 다다미방과 정원을 따라 걸으면 개항장 부촌의 살림살이가 보입니다.
일본 무역상사 미쓰이물산의 인천 지점
일본을 대표하던 무역상사 미쓰이물산의 인천지점 건물입니다. 개항장 무역이 왕성하던 시절 곡물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상사의 흔적으로, 지금은 시 등록문화유산으로 남아 근대 상업 건축의 모습을 전합니다.
법당 안의 불화 한 점이 문화유산
능인사에 모셔진 신중도는 불법을 지키는 신중(神衆)들을 그린 불화입니다. 절 자체보다 그림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우라, 법당 안에서 조용히 그림을 살펴보는 것이 이 정류지의 핵심입니다. 서양식·일본식 건물 사이에서 만나는 우리 전통 불화라 대비가 뚜렷합니다.
1923년 우체국 · 둥근 모서리 정면
1923년에 지어진 인천우체국 건물로,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정면과 벽돌 위 석재 장식이 특징입니다. 2019년까지 실제 우체국으로 쓰이다가 보수를 위해 문을 닫았고, 근대 우편의 거점이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개항장에서 동인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1911년 세관 창고 · 벽돌 벽과 목조 지붕
1911년 인천세관이 세운 창고와 부속 건물입니다. 개항장으로 들어온 물자를 검사하고 쌓아 두던 곳으로, 벽돌 벽과 목조 트러스 지붕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철도 공사로 자리를 옮겨 복원했고 지금은 인천세관 역사공원의 전시 공간으로 쓰입니다.
1935년 학교 강당 · 지금도 학생들이 쓴다
1935년 옛 인천중학교 강당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붉은 벽돌과 큰 창의 단정한 근대 학교 건축으로, 지금도 제물포고등학교 학생들이 쓰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야행 때는 강당 앞마당이 공연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1897년 인천 첫 천주교 성당 · 세 종탑
1897년 프랑스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세워진 인천 첫 천주교 성당입니다. 붉은 벽돌 로마네스크 양식에 1937년 증축으로 지금의 세 종탑이 완성되었고, 언덕 위에서 개항장을 내려다봅니다. 밤에는 종탑 조명이 야행의 등대 역할을 합니다.
1899년 석조 은행 · 지금은 개항박물관
1899년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으로 지어진 석조 건물입니다. 화강암 벽과 둥근 지붕의 르네상스풍 외관은 개항장 은행 건물 가운데 가장 위엄 있고, 조선 해관에서 거둔 세금을 다루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인천개항박물관이 되어 개항기 인천의 통신·철도·은행 이야기를 전시합니다.
1884년 청·일 조계의 경계 돌계단
1884년 청나라와 일본 조계의 경계였던 돌계단입니다. 계단 위 공자상을 기준으로 왼쪽은 중국식, 오른쪽은 일본식 건물이 늘어서 시대의 경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야행 때는 계단 양쪽 석등에 불이 들어와 두 나라의 거리가 나란히 빛납니다.
짜장면의 원조 공화춘 · 2012년 박물관
짜장면의 원조로 알려진 옛 공화춘 건물입니다. 1908년 무렵 산둥 출신 화교가 문을 연 음식점이 오랫동안 영업하다 문을 닫았고, 2012년 짜장면박물관으로 다시 열렸습니다. 벽돌 중정 구조와 옛 주방이 남아 있어 한 그릇의 역사를 몸으로 만납니다.
1888년 해운 회사 지점 · 개항장 최고참 건물
1888년 일본우선주식회사가 인천에 세운 해운 회사 지점입니다. 개항장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 가운데 하나로, 배가 실어 온 화물과 사람의 기록이 오갔던 곳입니다. 지금은 인천아트플랫폼 사무동으로 쓰입니다.
1933년 인천부 청사 · 지금도 중구청
1933년 인천부(府) 청사로 지어져 지금까지 중구청으로 쓰이는 건물입니다. 개항장 관청 거리의 중심이었고, 모더니즘풍의 수평 창과 타일 마감이 남아 있습니다. 밤에는 청사 앞 광장이 야행 행사의 무대가 됩니다.
일본식 점포 주택 · 지금은 카페 팟알
일제강점기 하역·운송 회사였던 대화조(大和組)의 사무소 건물입니다. 1층은 사무실, 2·3층은 살림집인 일본식 점포 주택 구조가 잘 남아 있고, 지금은 카페 팟알로 쓰여 옛 목조 계단을 그대로 오르며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한·중 교류 전시관 + 140년 화교 정착사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를 소개하는 전시관으로, 같은 단지의 화교역사관은 1883년 개항 이후 140년 화교 정착사를 담고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의 시작을 이해하고 걷기 시작하기 좋은 첫 정류지입니다.
1885년 아펜젤러 · 한국 첫 감리교회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입니다. 지금 건물은 뒤에 다시 지은 것이지만, 교회 뜰에 한국 개신교 초기의 발자취를 알리는 기념물들이 있어 개항장의 또 다른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1888년 한국 첫 서양식 호텔 터
1888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자리입니다. 개항장에 내린 외국인들이 서울로 가기 전 묵던 곳으로, 경인선이 놓이자 손님이 줄어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은 발굴된 터 위에 재현한 전시관에서 개항기 호텔과 인천 생활사를 만납니다.
1960~70년대 인천 서민의 살림 재현
대불호텔 전시관과 이어진 생활사 전시관은 1960~70년대 인천 서민의 살림과 거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개항기의 화려함 뒤에 이어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볼 수 있어 아이와 함께 걷기 좋습니다.
1885년 전신선의 출발점
1885년 조선과 청나라가 함께 세운 한성전보총국의 인천분국이 있던 곳입니다. 서울과 인천, 나아가 의주까지 이어진 전신선의 출발점으로, 개항장의 소식이 처음 전기를 타고 오간 자리입니다.
면(麵) 문화 체험 전시관
차이나타운의 면(麵) 문화를 주제로 한 체험 전시관입니다. 짜장면·냉면·우동 등 인천이 키운 면 요리의 역사와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고, 여러 면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공간이 함께 있습니다.
1966~2001년 시장 관사 · 2021년 시민에게 개방
1966년부터 2001년까지 인천시장 관사로 쓰이던 집을 2021년 시민에게 개방한 곳입니다. 언덕 위 정원에서 인천항이 내려다보이고, 개항장의 옛 사진과 자료를 볼 수 있어 잠시 쉬어 가기 좋습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기념 · 1982년 건립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진 것을 기념해 1982년 세운 탑입니다. 인천은 미국과 첫 조약을 맺은 도시로, 자유공원 자락에서 인천항을 향해 선 이 탑은 개항의 출발점을 상징합니다.
1888년 한국 첫 서구식 공원 · 항구 전망
1888년 각국 조계의 외국인들이 만든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입니다. 처음 이름은 만국공원이었고,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어 지금 이름이 되었습니다. 정상에서 인천항과 개항장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1930~40년대 창고를 고친 복합 문화공간
1930~40년대 개항장 창고와 사무실 건물을 고쳐 2009년 문을 연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붉은 벽돌 창고 사이 마당에서 전시·공연이 열리고, 입주 작가들의 작업실이 골목을 따라 이어집니다. 야행 때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옛 항만 창고에 담은 한국 근대문학
옛 항만 창고를 고쳐 2013년 문을 연 공공 종합 문학관입니다. 개화기부터 해방 전후까지 한국 근대문학의 흐름을 초판본과 육필 자료로 보여주고, 인천을 무대로 한 작품들을 따로 모아 놓았습니다.
1884년 각국 조계로 오르던 계단
1884년 설정된 각국조계, 곧 영국·미국·독일 등 여러 나라의 공동 거류지로 올라가던 계단입니다. 계단 위쪽이 옛 각국조계, 아래쪽이 청·일 조계였다고 전해지며 자유공원과 이어집니다.
옛 일본 조계 · 은행거리라 불린 길
옛 일본 조계였던 거리로, 은행과 상점이 늘어섰던 자리에 일본식 목조 상가의 외관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제1·18·58은행이 나란히 서 있어 은행거리라고도 불리며, 야행의 등불이 가장 먼저 켜지는 구간입니다.
옛 건물을 고친 문화 공간
1977년에 지어진 건물을 고쳐 만든 문화 공간입니다. 개항장의 새 건물들 사이에서 근현대의 시간을 잇는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고, 전시와 모임이 열립니다.
차이나타운 입구를 지키는 중국식 문
차이나타운 입구를 지키는 중국식 문 패루(牌樓)입니다. 인천과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웨이하이시가 기증한 것으로, 이 문을 지나면 붉은 등과 간판의 차이나타운이 시작됩니다.
1884년 청국 조계에서 시작된 거리
1884년 청국 조계가 설정되면서 시작된 한국 최대의 차이나타운입니다. 산둥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무역과 음식점으로 터를 잡았고, 붉은 등과 중국식 간판이 이어지는 거리에서 짜장면의 고향을 만납니다.
항우와 유방 이야기가 이어지는 언덕길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 사이 언덕길에 초(楚)나라와 한(漢)나라의 이야기를 그린 벽화가 이어집니다. 삼국지 벽화거리와 함께 걷는 길로, 항우와 유방의 장면을 따라 오르다 보면 자유공원에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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